[7월 8일] 욥기 33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ul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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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본문: 욥기 33:1-33

찬송: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한동안 오프라인 모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 공동체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화상 회의 서비스를 통해 소그룹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등 다양한 SNS 앱을 통해 개인적인 교제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맞이한 환경은 전화통화와 문자 메시지가 전부인 줄 알았던 소통의 창구가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독특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소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타인과 한 가지 이상의 소통 창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인간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통을 시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후의 입을 통해 이것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제 살펴 보았던 욥기 32장부터 37장은 엘리후의 말입니다. 엘리후는 좀 독특한 인물이죠. 그는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자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 욥에게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그는 욥의 친구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분노가 가득한 모습으로 말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엘리후가 입을 연 근본적인 이유는 분을 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질책을 한다거나 창피를 주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연설을 하는 이유는 욥을 의롭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2절입니다.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대를 의롭다 하리니 그대는 말하라.” 엘리후는 지금 욥의 명예회복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욥이 옳다고 인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어떻게 소통을 시도하시는지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어떻게 소통을 시도하십니까?


첫째, 여러 번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14절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름은 관심이 없도다.”


욥은 자신은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순전하고 불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본인에게서 허물을 찾으시고, 마치 원수 대하듯이 하셨다고 말을 했죠. 본인을 차꼬에 채우시고, 모든 길을 살피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으신다고… 그래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아니라고 합니다. 욥의 말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여러 번 말씀하시지만 사람이 깨닫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죠. 사람이 곤히 잠들었을 때나 밤중의 꿈이나 환상으로 인간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무시거나 숨어계시는 신이 아니라 늘 깨어서 인간과 소통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욥은 이미 꿈에서 하나님과 소통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욥기 7:14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욥은 하나님이 보내신 꿈과 이상으로 놀라고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꿈들을 잔혹한 고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과 소통하시는 방법이 아니라 고통을 주기위한 잔인한 수단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후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꿈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꿈을 통해 악한 일을 멈추고, 자만이 꺾이기를 바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모세를 부르실 때처럼 우리에게 음성으로 말씀하시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육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느낄 수 없고, 하나님과 소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론 꿈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리실 때도 있습니다. 악몽을 통해서 우리를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시기도 합니다. 그것을 통해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또한 어떻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까?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은 계시된 말씀을 통해 우리와 대화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사람이 마음을 돌이켜 교만하지 않도록 인도 해 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아버지의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면 안전한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를 따라가면 마음을 돌이켜 교만함과 악에서 멀어질 뿐만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길로 걸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과 소통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을 좇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어떻게 소통을 시도하십니까?

둘째, 고난을 통해 소통을 시도하십니다.


19절입니다.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쉬운 성경에서는 19절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분은 사람이 깨닫게 하시려고 뼈마디가 쑤시는 아픔과 고통을 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육체의 질병과 같은 고난을 허락하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고난은 강렬한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맛보게 하거나 그것보다 심한 아픔을 겪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육체의 고난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것인지… 또는 반복적인 말씀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듣지 않은 결과로 주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이 고난을 사용하셔서라도 주의 백성과 소통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죽음과 같은 고난을 안겨주면서 까지 우리가 의인의 자리에 앉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고난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인이며, 그것을 통해 우리가 조금이라도 교만하거나 의를 드러낸 것이 있다면 돌이켜 주와 더 가까이 있기를 바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고난의 한 중간에 계십니까? 육체의 질병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가정의 문제로 하루를 살아가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고난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또 하나의 소통 창구입니다. 고난은 자녀에게 더 크고 확실하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오늘도 그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고, 주의 음성을 들으며 힘차게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1. 고난을 통해 소통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 주께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2. 오늘도 질병, 경제의 문제, 자녀의 문제로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회복을 주시고, 그들이 귀를 열어 주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